어떤 세월의 종언
김정권 시몬.수필가
워낭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달구지가 길을 간다. 울퉁불퉁한 길이든 평평한 길이든 언제나 삐거덕거리며 간다. 처음 가는 길이든 익숙한 길이든 소리 냄은 마찬가지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는 나이 들어가고 수레도 노후 되어 삐거덕거림은 더 심해진다. 길 위의 마찰과 충격 속에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고 훈장인 듯한 그 소음도 자주 들으면 친숙해지고 리듬처럼 정겨워진다.
겨울로 시작된 캘린더는 또 다른 겨울로 향해 힘차게 약진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척 빠르고 또 어떤 이들에겐 아주 느려 터진 듯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일정한 제 속도로 흘러가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월의 길목에 서서 뒤돌아보면 언제나 아쉽고 후회스럽다. 처음 걸어보는 2019년의 인생길이라 낯설고 서툴 수밖에 없었겠지만 초행이라 하여 어설픈 게 당연시됨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상황이기에 핑계와 변명은 허락되지 않는다. 해를 반복하면서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자신도 없기에 시간의 흐름이 때로는 두렵다. 언제까지나 나는 낯선 길을 가야하고 언젠가는 끝나는 길을 가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익숙한 길을 가고 있고 끝이 없는 길을 간다고 착각하며 산다. 기회가 항상 주어짐도 아니고 세월이 가면서 삐거덕거림이 더 심해짐을 나만 모르고 사는 듯하다.
6월초에 “설악산을 사랑했던 인도네시아 영부인, 하늘나라로…”라는 제목이 인터넷기사로 떴었다. 수실로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의 부인 유도요노 여사가 혈액암으로 별세했다고 한다.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의 딸로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등 우리나라와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인니는 지난날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했던 나라이기에 내게도 인연이 있다. 기사 말미에 장례식에서 아들이 조문객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어머니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어머니는 투병 중에도 가족과 인도네시아 국민만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생이 끝날 때까지 국민이 행복할 때는 행복했었고 국민이 슬퍼할 때는 슬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지체 높은 이슬람나라의 저명인사인데 가슴에 품은 사랑과 배려는 가히 그리스도적이다.
언젠가 그때, 내가 삶의 종언을 고할 때 내 아들도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겠다. 우리 아버지는 열심히 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지만 늘 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나름 애는 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