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 정상情想
배 의 순 요한보스코.시인
‘밥이나 먹었나.’ 우리는 가까운 친구, 혹은 친지를 만나거나 통화를 할 때, 첫마디가 ‘밥 먹었나.’ 이 말은 우리의 오랜 인사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기위해 하루 세끼를 먹고 영양을 골고루 채워야 한다. 실제로 코리아의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6.25전쟁 이후 혹독한 시절을 겪은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먹는 문제를 먼저 묻는 이유는 생활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먹는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먹는 일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리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또 다른 문제는 혼자 살면 외롭고, 외로운 것은 좋지 않다고 아무 생각 없이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원래 즐거움과 외로움은 빛과 그림자처럼 어느 한쪽만 존재할 수 없다. 즐거움이 있으니까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을 아니까 즐겁다고 느낀다. 나이가 들어 우울해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불만과 피해 의식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신에게 묻고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칠백년 전에 쓴 기도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거룩하신 주님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고/이해 받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은 인생이 주는 위대한 선물이다. 산술논리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심한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홀로 사는 내게 어찌 남이 내 행복을 가져다주겠는가. 오래 살면 천덕꾸러기가 되어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은, 돌아서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온갖 장애나 병고에 시달리면서 어쨌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다만 사람은 후회할수록 삶의 질은 떨어진다. 젊어봤으니 늙어도 봐야죠.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더욱 부드럽게 맞이하게 한다. 사람의 생명은 두 번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후반전이다’ 는 말이 있다. 후반부에는 굳이 똑 같은 실수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험의 힘이다. 운명은 변하기 마련이다. 슬픔을 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사람은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본질적으로 생활습관이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득 황창연 신부님의 저서<사는 맛 사는 멋>에서 “노인 십계명”이 생각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자기답게 존재하고 싶다. 이제는 먼저 한발 물러서서 내 자신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