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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게 잔을 건네며

 

김시탁 스테파노.시인

 

내게는 사회에서 만난 나이 두 살 많은 형이 있다. 같은 문학세계에 발 디디고 만난 우리는 둘 다 시인이다. 그와 나는 자주 만나 운동을 한다. 주로 목 운동이다. 술잔을 털어 넣는 목 운동을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한다. 서로 바빠서 못 볼 때면 마음이 절로 미끄러져 가서 술잔을 부딪친다. 그와 마시는 술은 달다. 우리는 문학의 텃밭에서 수확한 포도주를 빚어 맛나게 먹을 줄 아는 정다운 술친구다. 우리는 덩치가 커서 멧돼지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것 같지만 실상 지렁이도 못 잡는다. 그는 겁이 나서 못 잡고 나는 징그러워서 못 잡는다. 그는 산 낙지를 잡지는 못하지만 먹기는 잘하고 나는 잡지도 먹지도 못한다. 역시 징그러워서이다. 외형만 보면 둘 다 참나무 장작이나 잘 팰 것 같은 머슴같이 생겼다. 내가 그에 비해 좀 나은 구석이 있다면 머리카락이 몇 개 더 있고 뱃살의 무게를 다는 저울추가 조금 작다는 정도다. 사람들 눈에는 둘 다 시인이라기보다는 포클레인이나 덤프트럭기사 혹은 그냥 힘 좀 쓰는 막일꾼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시인이고 자주 만난다. 그는 지병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꽤 긴 시간을 방황했다. 몇 년을 눈물겨운 간병 끝에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한 때 그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술병을 끼고 살았다. 혼자 마시는 술은 그에게 늘 눈물이었다. 그는 가슴에 묻은 아내를 쉬 떠나보내지 못해 따라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술을 마시면서 소리 없이 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커다란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고여 오는 슬픔을 꾹꾹 쥐어짜 내는 일밖에 없었다. 그를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하느님 품 안으로 인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성당 한 번 다녀보지 않겠느냐고 나와 같이 신앙생활 한 번 해보자고. 다른 건 몰라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그를 설득했다. 처음 그는 마른풀 흔드는 바람처럼 웃었다. 그 바람에게 잔을 건네며 지속적으로 그를 설득할 수 있었던 용기와 믿음은 진정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녕 그분의 능력이었을까.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나는 심장으로 그가 마음을 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 815일 성모승천 대축일 날 그는 세례를 받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안민고개에 올라 주님의 기도를 바친단다. 그의 신심이 넉넉한 그의 뱃살처럼 차올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더 이상 가슴 중앙으로 강물 흐르고 대숲 흔드는 바람소리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가면 술도 못 마시는데 우리 천주교는 술 마셔도 괜찮다 좋제?” 내가 어깨를 툭 치자 넉살 좋은 웃음을 건네는 그 형이 있어 내 삶의 근육질이 좀 더 탄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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